(도케) 남겨둘게

written by. 십구







1. 아침에는 숟가락을 세 번이나 떨궜다.

 오늘 아침 윤도운은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두 번이나 떨궜다. 첫 번째는 숟가락 쥔 손에 너무 힘을 안 줘서. 두 번째는 그 옆 젓가락 집으려다 실수로.
 본래 도운은 실수가 잦았다. 밥 먹다 숟가락 떨구는 일은 물론이고 세탁물을 흘린다거나 양말 뒤집어 신기 이불 거꾸로 개기 폼 클렌저로 머리 감기 기타 등등. 도운의 주변인들은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는 원래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삐걱거린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니 도운이 이렇게 허둥대며 실수를 남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바닥으로 추락한 숟가락을 두 번 모두 윤도운이 주웠다는 것이다. 실수할 때면 언제나 곁에 누군가가 있었기에 그 순간을 만회하기까지 그리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강영현은 떨어진 수저를 줍고, 흘린 세탁물을 다시 넣고, 양말을 제대로 신겨 주고, 이불을 바르게 개고, 웃는 얼굴로 엉망이 된 윤도운의 머리에 물을뿌리며 다른 손으로는 샴푸를 집어 건넸다. 그러면 거품이 몸에 닿지 않도록 잔뜩 허리를 숙인 도운은 폼 클렌저와 샴푸를 헷갈려 하지 않는 영현의 머리를 상당히 비상하다 생각하며 손뼉을 쳤다. 오늘은 수저를 떨궈도 말없이 주워 주는 사람이 없다. 도운은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구부려 느릿하게 숟가락을 줍고, 다시 몸을 일으켜 꼿꼿한 자세를 만들고 하는행동들을 무려 두 번이나 반복하느라 10 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낭비했다. 입안 가득 낱낱이 부서지는 밥 알갱이들을 천천히 느끼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영현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정말 아까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앞에 놓인 시금치를 집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던 찰나에 도운의 숟가락이 다시 한 번 바닥으로 추락했다. 정신머리가 밥상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라며 삼 분만에 생각을 마친 도운이 다시 숟가락을 주웠다. 입맛이 제대로 떨어졌다. 밥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향한도운이 문득 고개를 숙이자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곰돌이 모양 실밥이 저를 향해 인사하는 게 보였다. 또 양말을 뒤집어 신었다. 도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늘로 세 번째, 윤도운은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떨궜다. 아침이 엉망이었으니 오늘 하루 역시 엉망일 것이다. 이것은 몹시 나쁜 징조다. 도운은 할 수만 있다면 이 불운한 기운을꼬깃꼬깃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 뒤 제대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 괜찮지 않다.

 불편한 양말을 신발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버스 밖 풍경을 감상했다. 분명히 이 부근에서 반찬 가게를 본 것 같은데 평소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착각한 건지 아님 그새 가게가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마침 배달 음식에 질렸던 터라 오늘만큼은 집밥을 먹기 위해 근처에서 반찬이라도 살까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직 해가 저물기까지 한참 남은 시간 때문인지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가로이 동네를 훑는다. 이렇게 보다 보면 뭐라도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눈알을 굴리다 왜인지 타로 가게가 눈에 들어왔을 때, 도운은 정차한 버스에서 곧장 뛰어내렸다.
 뭐에 홀린 사람 마냥 문을 박차고 들어간 가게에서 카드 몇 장을 뒤집고, 알 수 없는 그림 풀이가 이어지는 동안, 밖에 즐비한 연인들의 모습을 감상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들은 오늘 어떤 연애를 했을까 문득 머릿속으로 참견도 해 보고. 다 좋은데 오늘은 물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수법인데? 웃으며 건물을나섰다가 도로 부근 물웅덩이에 홀딱 젖어 씩씩대는 바람에, 그러느라 오늘 하루 일정 어디에도 없던 카페에 들어서는 바람에. 도운은 문득 지난날을 떠올리고 말았다. 어딘가 모르게 오늘과 닮아 있던 그날을.
 내 보지 마라. 다 젖어가 못생겼다. 빗나간 일기 예보를 원망하며 비에 홀딱 젖은 차림새가 스스로 창피해 견딜 수 없었던 도운이 코를 훌쩍였다. 자꾸만 땅으로 꺼지려는 머리를 쪽팔려서 들 수가 없다고, 그렇게 누굴 향한 원망인지 모를 것을 속으로 앓아대며 뒤통수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댓 발 나온 입을 숨기기 위해 다시 말아 넣던 찰나 눈앞에서 팔랑거리던 영현의 카키색 롱 카디건 소매가 사라졌다.
 헐렁하고 따뜻한 게 어쩐지 칠칠맞은 도운 같기도 그런 도운의 품 같기도 하다며 영현이 제일 좋아했던 카디건이었다. 못지않게 덤벙대는 그가 뭐 하나 묻힌 적 없을 정도니 그 애정의 크기는 굳이 묻지 않아도 도운 역시 알 만 했다. 그런 영현이 옷쯤이야 축축하게 젖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도운을 힘껏 끌어안았다. 문제는 조금 전까지 비를 맞은 도운의 몸이 아주 차갑다는 것에 있었다. 강영현은 한여름에 에어컨 바람 쐬다 감기에 걸리는 면역력 젬병 인간이다. 내일이면 감기에 두 눈덩이가 시뻘겋게 물들을 게 벌써 도운의 눈앞에 이만치 훤했다. 그리고 간병인은 분명 윤도운일 거다. 게다가 오늘 세탁 담당 역시 윤도운. 누구 좋으라고 저런 행동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나도.
너만큼.


 좋아서 견딜 수가 없다. 푸슬푸슬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오려 한다. 억지로 다문 입에 힘을 주어도 잇새를 비집고 호흡이 드러난다. 뿌연 시야 안 유일하게 또렷한 것은 천천히 품에서 떨어진 영현이었다. 그가 함께 웃었다. 사랑에 빠진 윤도운은 삽시간 천하무적이 된다. 이제 다 괜찮은 것 같다.
 

“윤도운, 괜찮냐?”
 

 낯익은 얼굴이 도운의 앞에 나타났다. 분명 동기 중 하난데 떠오르는 이름은 강영현의 것이 전부다. 도운은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괜스레 젖은 바지춤만 응시했다. 현실로 돌아온 윤도운의 곁에는 지금 이름 모를 동기만이 있다. 옅은 커피향이 어지럽다. 아마도 동기의 몸에 밴 것일 테다. 단번에 기억들 틈에서 강영현의 향기를 기억한 뒤 끄집어낸다. 한때 도운은 영현의 향수가 꼭 아버지 자동차에서 나던 차 시트 냄새 같아서 싫어했었지만 이제는 그 기억들이 전부 무색할 만큼 그리워졌다.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 말고 코끝이 따갑도록 진하고 탁한 강영현 향수 냄새를 다시 맡을 수만 있다면, 그의 허리를 깊이 끌어안고 가는 목에 코를 박아 공기 들이마실 수 있다면.
 

“괜찮, 괜찮… 우욱.”
 

 정말? 강영현이 없는데? 단어들을 조합해 질문을 만든다. 던진다.
전부 거짓말이다. 도운은 괜찮지 않다. 이렇게 아파도 되나 싶을 만큼.
 




 
3. 반찬이 느리게 줄어든다.

그래서 도운은 냉장고 안을 바라보다 비로소 영현의 부재를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평소 아침 점심 저녁 전부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닌 도운은 곁에 있던 사람마저 없으니 정말 허기지다는 느낌을 받기 전까진 밥을 먹지 않았다. 전에는 본가에 들를 때면 불효자 역할을 자처하면서까지 반찬들을 쓸어 오곤 했는데 요새는 그런시절이 존재했던가 흐릿할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생선 좀 더 가져가라며 얼마 전 억지로 쥐여 준 굴비 세트가 여태 그대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도운 탓에 처리는 언제나 영현의 몫이었다. 윤도운은 성의 없이 젓가락을 움직여 뼈를 바르던 강영현을 떠올렸다. 엉망진창의 손놀림을 잠시 구경하다 조심스레 가시를 발라 주면 영현은 아기 새마냥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열심히 살을 바르느라 정작 본인은 한 숟갈도 뜨지 못했음에도 기분이 좋았던 날이다. 비단 굴비뿐만 아니라 집밥 반찬이라 하면 강영현은 사족을못 썼다. 그중에서도 도운네 장조림을 좋아했었다. 본가에서 장조림만 크게 한 통씩 챙겨 오던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영현은 힘들게 가져온 보람이 있게끔 잘 먹어 주었다. 정말 맛있다고 했었는데. 냉장고 한편에는 비우지 못한 장조림 통이 있다. 손도 대지 않은 굴비 세트도 있고, 미처 다 먹지 못한 스팸이라든가 시금치라든가 하는 다른 반찬들 역시 많았다. 한참 손을 넣고 방황하던 도운은 반찬통 대신 맥주 캔 하나를 집었다.
 
 




4. 분명하지 않은 정신과 또렷한 마음으로 손에 익은 번호를 누른다.

금세 취한 도운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진작 지웠다고 생각한, 그렇지만 외워 둔 번호를 하나씩 누르자 저장된 번호라며 아직 남아 있던 영현의 번호가화면에 떴다. 우리 형. 저장명을 한참 바라보다 고민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연결음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손톱을 뜯었다. 강여엉혀어언. 영혀니 형. 혀엉. 전화 좀 받아.형 제발 전화 좀 받아 줘. 전해지지 않을 진심을 열심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5.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6. 하나도 빠짐없이 여기 있다.

 이별 후 영현은 함께 살던 집에서 나갔다. 애초에 그가 도운의 집으로 들어온 것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둘이 사용하던 공간이 다시 하나의 것이 되자 쓸데없이 크게만 느껴졌다. 함께 살던 때는 물론이고 이전에 혼자 지낼 때 역시 집이 이렇게 적막하고 공허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헤어지고 처음 며칠 동안 도운은 이 모든 것이 혹시 신기루는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꿈같던 시간들이 분명 존재했음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영현의 물건들이 증명한다. 오늘은 영현이 두고 간 티셔츠들을 발견했다. 그 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한파가 잦아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기에 여름용 반팔 티셔츠를 챙길 여유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은 수가 아니었기에 시간이 흐른 후에 마음이 정리되고 나면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을까 싶어 치우지 않고 있던 것들이다. 도운은 주인 없는 티셔츠들과 함께 올 거라고 믿었던 그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오래토록.


 무수히 많은 티셔츠에 얽힌 사연들을 낱낱이 기억한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다른 공간에 있었다. 서랍 맨 위 놓인 흰색 반팔 티셔츠는 원래 도운의 것이었으나 어쩌다 보니영현의 것이 된 물건이었다. 그 옆 파란색 체크 셔츠는 여분의 옷이 없던 바닷가에서 급하게 산 것이며 맨 왼쪽 검은색 티셔츠는 함께 놀이공원 갔을 때 영현이 입었다. 그날 영현의표정이 어땠는지, 목소리의 높낮이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슨 놀이기구를 좋아했는지, 어떤 음료를 마시다 흘리고 말았는지. 도운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이 기억들은 앞으로도 도운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영현의 티셔츠들처럼.
 떠나가던 순간에 영현은 도운의 양말을 신고 있었다. 녹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이루어진 얇디얇은 여름용 발목 양말. 분명 보았지만 그때의 도운은 속에 있던 감정들을 표출하기 여념이 없었기에 끝끝내 말해 주지 못했다. 신고 나간 신발 역시 운동화였으니 발목이 많이 시려웠겠지만 그러고도 한참은 알아채지 못하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양말을 벗을 즈음에야 겨우 발견했을 것이다. 그날 그렇게 현관문을 박찬 뒤, 영현은 어디로 갔을까. 말없이 서랍을 닫는다. 이 옷들을 버리고 싶지도, 입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 안 가고 이 자리에 계속있었으면 해서.
 





 
7. 넌 지금 마음 편하겠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도운은 종종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습관 같은 우울을 앓고 있을 때마다 작정이라도 한 듯이 그런 말을 지껄였다. 드디어 혼자가됐으니까. 덧붙인 말을, 도운은 단 한 번도 공감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좋지 못한 시간에서 유감이 오가는 일을 번복하며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을 즐겼다. 그래서 그것이 통했는가하면 사실 어느 방향으로든 확언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향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지만 빈약했고,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모서리로 밀어 버린 그 자를 원망했으며(친구? 아니면 강영현.), 덕분에 상기되는 순간으로부터 몇 시간은 지겨운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심장의 반을 도려낸 뒤 많은 시간 동안 도운은 가까스로 절단에 대해 체감하는 일을 덜 고통스럽게 겪는 법을 배웠다. 능숙하고 유연하지는 못하더라도 의연하게 생각을 씹으면 잘게 쪼개어진 조각들이 간혹 허를 찌를 때도 생각만큼 아프지 않았다. 그 기점으로 아무리 생각이 풀어져도 당신의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않겠다던 철 지난 다짐이, 좋은 시간과 함께 조금씩 사라졌다.
 

“이 새끼는 아직도 전 여친 얘기를 한다니까.”
“그러게. 야 난 다시 붙어먹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냥 잊어 인마. 세상에 널린 게 여자야.”
 

 사귀는 동안은 얼굴 한 번 안 보여 주더니…. 예쁘냐? 질문과 동시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 도운은 자연스레 마지막 날 영현의 모습을 그려냈다. 추위에 약한 사람이 아무렇게나 겉옷을 걸치곤 황급히 빠져나가던 그 모습을 말이다. 영현의 줄무늬 양말과 운동화와 붉었던 복사뼈, 좋아하던 넓은 어깨 그리고 그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 너무 힘껏 쥔 바람에허옇게 질린 손과 불룩하게 튀어나온 대조된 색의 손가락 마디마디들, 뱉는 족족 아프게 했던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들.
 

“예쁘냐니까.”
 
얼마나 추웠을까.
 
‘너 나 사랑하긴 했니.’
 
너무.
 
‘우리 그만하자.’
 
말도 못하게.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인심 쓰듯 트이는 숨이 가뿐하다.
 
 

8. 그럼에도 모든 것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러가고

9. 우리는 새로운 나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E.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호흡하고 살아간다.
 
 





이별 후 윤도운이 남겨둔 것들.